2026.03.22

엄마랑 하는 벚꽃없는 벚꽃 구경

엄마랑 세 시간, 엄마랑 만 오천보를

옛날엔 안 그랬는데.

3년 전만 해도 가족과 거의 대화를 하지 않았던 거 같다. 각자가 무슨 생각을 갖고 사는 사람인지 알아보려 한 적이 없다.

-밥 잘 챙겨 먹어. 따뜻하게 입어. 청소 잘 해야 해. 별 일 없니.
-네네, 알아서 잘 해요. 했다니까.

몇십 년을 이런식으로, 대화라 말하기엔 부족하지만 아무튼 그렇게 대화했다.
그러다 나가서 살기 시작하면서 서로가 눈에 보이지 않음에 다행이라 여겼고, 달에 한 번 조차 먼저 연락하는 적이 없던 나는 전화나 문자를 남겨야하는 때면 부담을 느꼈다.

한 번은 떨어져 사는 나에게 엄마가 반찬을 준비해서 온 적이 있다. 나는 왜 오냐고 화를 냈다. 나는 엄마를 울렸다.
실은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 알고 있는데, 내게 문제가 있단 걸 진작에 자각했는데, 되뇌이며 연습도 했었는데 정작 마주한 가족한테 그 모난 심성을 가릴 수 없었다.
정말인데 나는 나로 인해 웃는 가족들이 기억나지 않았다. 그 반대가 반복될수록 나는 그런 사람이고 그런 사이니까. 하며 죄책감을 빨리도 지웠다.

그러다 어느 날 울고 있는 나를 따라 엄마가 울었다.
서로를 이해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나를 이해하는 건 엄마밖에 없었고 내게 위로가 되는 것도 엄마밖에 없었던 시간이 있었다.

그즈음부터 나는 내가 엄마랑 아빠와 닮은 점을 조금씩 인지했다. 스스로를 살피다보면 엄마와 아빠를 이해하는 새로운 방법이 되기도 했다.
나의 예민함이 엄마로부터, 나의 무심함이 아빠로부터, 나의 감성이 엄마로부터, 나의 호기심이 아빠로부터, 나의 성향은 두 분과 촘촘히 얽혀있었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며 내가 놓친 엄마와 아빠의 30년들이 궁금했다.
처음엔 입에 꺼내기 어려웠다. 그래도 일기에 버킷리스트처럼 써놨었던 엄마의 옛날얘기 주제들을 질문으로 드렸다.

-엄마도 옛날엔 친구 참 좋아했어.

언젠가 전에, 옛날에 고개 숙이고 밥그릇만 보면서 흘러듣던 엄마의 초등학교 얘기였던 것 같다. 하지만 엄마의 얼굴을 똑바로 보면서 듣는 건 달랐다.
밥먹으면서도 5분이 넘는 대화를 해본 적이 손에 꼽았는데 함께 한 시간을 얘기했다.
나는 말이 많았고, 엄마도 말이 많았다. 선명히 기억하는 건 엄마는 웃으면서 얘기했다.
나는 몰랐다. 엄마가 웃을 때 뺨이 붉어지는 줄을

그 모습이 혼자 집으로 돌아왔을 때 한 번, 두 번 계속 생각났다.
생각이 날 때면 눈물도 났다. 진작에 못했던 평범한 것들이 나중에 가면 더 큰 후회가 될 것 같아 무서웠다.

그런 비슷한 생각으로 어제 엄마가 좋아할만한 모카빵을 사들고 느닷없이 찾아갔다. 오늘도 일이 너무 많다던 엄마는 산책하고 싶다는 내 말에 즉흥적으로 같이 피지도 않은 벚꽃을 보러갔다.
활짝 핀 벚꽃은 없었지만 엄마는 개나리를 보며 좋아했다. 옛날에 학교가는 길엔 개나리가 많았다며.

같이 만오천보를 걸었다. 함께 세 시간을 얘기했다.
엄마의 얘기를 다 기억하진 못해도 어제도 엄마는 웃었으니까 그게 속이 놓인다.

이상한 사람

저녁이 되어서 엄마와 헤어지고 돌아오던 길에 오랜만에 사이비 포교자한테 붙잡혔다.
평소처럼 꾸벅하면 지나갈텐데, 그 분은 발걸음 맞춰 걸으며 계속 얘기했다

-힘든 일 많으셨죠?

글쎄요, 전 되게 행복해요. 금방 헤어진 엄마가 생각나서 그렇게 대꾸한 게 대화를 받아주는 행인으로 보였던 거 같다. 얼굴, 관상, 사주 그런 비슷한 얘기를 하다가 그 분은 또 그렇게 얘기했다.

-효녀시죠? 부모님한테 되게 잘 하는

그 말에 그 분을 빤히 쳐다봤다.

-어떻게 알았나 싶죠? 원래 이상한 날에 이상한 사람이 꼬이는 거거든요. 이게 다 … 저희 얘기를 한 번 더

첫 번째로, 나는 오늘 효녀였을까. 내가 그런 말을 들을 자격이 있나 라는 생각
두 번째는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말을 이어가는 상대의 용기.
마지막으로는 그 분의 콧물.

오랜만에 엄마를 보러 간 것도, 돌아오는 길에 사이비가 효녀얘기를 꺼낸 것도, 마침 가방 속에 여행용 티슈가 있던 것도 신기한 우연이었다.

그리고 나도 나이가 들었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어쩔 줄 몰랐을 10년 전에 학생 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그냥 웃으면서 저 휴지 있어요. 하고 티슈를 주고 그냥 돌아서서 마저 갈 길 가는 여유가 있었다.

그리고 엄마한테 전화하며 그 일을 일렀다.

-스토커인가? 나랑 엄마랑 있는 모습을 본 거면 따라온 거야? 무서워.

진담 반 농담 반, 내 말에 엄마는 걱정하며 집에 도착할 때까지 전화를 받아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