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하나 당 만원

대체 내가 뭐라 썼을까

그 한 달이 두고두고 고마웠다

아빠가 제안했다.

“책 하나 읽으면 만원 줄게. 독후감까지 쓰면 말야.”

이제 막 대학생이 되기 직전, 나는 철학 분야에 한해 독후감 당 편당 만 원을 받을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할게. 한 열댓 권을 아빠한테 제출했는데, 읽은 척한 게 좀 많았다.
하지만 그 덕에 알게된 인물, 그리고 그때의 감상은 나를 바꿨다.

누가 어떤 얘기를 어떤 이유로 어떤 사고로 주장했으며 내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진 말할 순 없다.
제대로 이해했다고 볼 수 없고 그렇게 잘 기억하지도 않으니.
더불어 한 달만으로 나라는 사람의 인격이 달라질만큼 흡수력을 갖춘 것도 아니었다.

다만 내가 바라보지 못하는 시각의 존재와 옳고 그름을 떠나 저마다의 삶의 방식이 무수히 많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물론, 이 또한 며칠을, 몇달을, 몇년을 걸쳐 되풀이하니 이제야 얼핏 와닿는다.

거기다 내게 그런 시간이 있었단 것과 그걸로 내게 무언가를 알려주려던, 그런 걸 가르치고 싶었던 아버지의 소극적인 개입이 있었단 게 종종 정의가 안 되는 감정을 남겼다.
난 또 누구에게 어떤 편견을 갖고 있던 건지 싶어서.

시간이 지나, 나는 아빠에게 그 한달이 나한테 인상깊고 지금도 살면서 큰 도움이 된 시간이었다고 얘기를 했었다.

아빠는 그 독후감을 아직도 갖고 있댔다.
보여달라고 해도 아빠는 보여줄 수 없다고 한다. 다만 언젠가 때가 되면 다시 돌려주겠다-하니 알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