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후추와 흑후추
얘네 둘이 맛 다름
어린 생각인지
밤에 이삼 일 먹을 분량의 채소 손질하고 밥 차려 먹고 집 앞을 서성였다. 그날은 유난히 속상한 옛날 일들이 다 떠올라서 전화로 엄마의 귀를 빌렸다. 그렇게 말을 주고받다가
”… 난 돈은 딱히 안 중요해. 다른 게 더 중요해, 내 많은 편견을 깨면서 많은 감정을 느끼면서 살고 싶어”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이 생각이 어린 건지 엄마에게 물었다. 또 다른 누군가에게 물었을 때는 네가 아직 젊네, 아직도 어리구나. 라는 답을 들으니 흔들렸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그렇지 않다고 답해 줬다.
그래서 백후추와 흑후추
며칠 전에 후추로 뭐 살지 고민했다. 특히 그라인더 기능이 있는 통 앞에서 두 종류로, 흑후추와 백후추로 나뉘어있길래 고민했다. 짧게 검색해보니 흑후추가 대충 맛이 더 강한 것 같으니 용량 대비 더 만족도가 클 거라 예상하며 처음에는 흑후추를 샀다. 그리고 호기심에 일주일 뒤 백후추를 샀다.
두 개는 확실히 맛이 서로 달랐다. 정확히는 후추 특유의 매운맛의 정도가 다른데, 각각 따로 써보면 요리를 아예 다르게 만들었다.
이런 맛의 미묘한 차이를 알고 요리를 할 수 있다는 게 뿌듯하고 후추를 쓸 때마다 의식된 만족감이 찾아온다.
“난 백후추와 흑후추의 맛 차이를 아는 사람이야 ㅎㅎ”
오직 나만을 위한 정보, 요리, 경험, 행복이라 느껴서 좋다.
거창하지 않게 내 삶을 넓힐 수 있다.